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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상식 한 스푼

MLB와 패밀리 비즈니스

by Blue오션 2023. 11. 19.

 

2008년 7월16일 양키스타디움에서의 마지막 올스타 게임이 개최되었습니다.

게임 전의 행사에서 골프 카트에 탄 양키스의 오너 조지 스타인브레너가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자리를 가득 메운 관중들은 보스의 컴백을 일제히 기립 박수로 환영했습니다.

건강 문제를 안고있던 조지 스타인브레너였지만, 양키스의 역사를 장식한 포수 요기 베라와

'Mr. Octobor' 레지 잭슨에게 시구식 공을 건네기 위해 오랜만에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경기장에 셀 수 없을 정도의 명선수들이 자리하고 있는 모습이 특히나 감동적이었다.

나의 인생 가운데, 그리고 구단의 역사 속에 이번 올스타 게임은 최고의 경험으로 남을 것이다."

1930년생인 조지 스타인브레너는 이러한 코멘트로 올스타 게임 개최의 기쁨을 표현했습니다.

가차 없는 독설과 승리만을 추구하는 공격적인 자세로 미국 프로스포츠계에 커다란 영향력을

끼쳐온 조지 스타인브레너는 몇 년 간은 건강상의 이유로 공식석상으로부터 모습을 감췄습니다.

스타인브레너에게는 2명의 아들과 2명의 딸 등 총 4명의 자녀가 있었습니다.

원래는 장녀인 제니퍼와 결혼한 스티브 스윈들이 '양키스 글로벌 엔터프라이즈'의 경영책임자였지만

2007년 2월14일 음주운전으로 체포되며 그 자리에서 물러납니다.

이후 제니퍼와 스티브 스윈들은 이혼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양키스는 구단 이미지에 커다란 타격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당시 52세인 행크와 41세의 할, 2명의 아들이 경영책임자라는

중책을 맡게 됩니다. 두 아들은 모두 아버지의 회사에서 경영 수업을 받아왔고,

장기간 양키스의 공동 파트너로서 활동해온 경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일을 이어 받는데 대해 행크는

"중요한 것은 양키스 구단이 '패밀리 비즈니스'라는 점이다. 이는 우리들이 바랐던 것이고,

또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며 속내를 밝혔습니다.

장남인 행크는 가족이 소유하고 있는 플로리다 주에 있는 광대한 목장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사업가가 되고 난 이후부터는 경주마 사업에 관여해왔습니다.

1980년대 잠시 구단 경영에 종사했을 때에도 단장이나 스카우트의 말을

한 마디도 놓치지 않고 받아들이는 자세로 경영에 임해왔습니다.

행크는 그들을 진정한 야구인이라 부르며, 경의를 표하기도 했습니다.

 

 

때때로 강성 이미지로 비춰지기도 하는 행크는 한때 뉴욕의 지역신문을 통해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특히 2007 시즌 종료 후, 조 토리 감독의 계약 갱신을 둘러싸고 

"아버지가 감독으로 영입하지 않았으면 토리의 감독 이력은 어떻게 되었을까?"라며

1년 계약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조 토리 전 감독을 비난하기도 하였습니다.

또 스타플레이어인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재계약 당시

"명예의 전당에 양키스 소속으로 가고 싶은지를 확실히 말해야만 계약할 수 있을 것"이라는

발언을 통해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였습니다.

 

한편, 차남인 할은 어릴 때부터 장래를 촉망 받으며 성장해왔습니다.

아버지와 같은 대학을 졸업한 후 계속 호텔 부문에 종사해왔습니다.

이혼을 경험했지만, 세 딸의 아버지이기도 한 할은 양키스의 경영 멤버이기도 했습니다.

2008시즌 종료 후에는 30개 구단의 오너 회으에서 '양키스의 공동 파트너'로 공식 승인되었습니다.

형제는 서로의 입장에 입각하여 상호 입장을 존중해오고 있습니다.

행동력 있는 구단주 행크가 야구 부문을, 침착하고 냉정한 할이 비즈니스 부문을 맡는 등

아버지의 역할이 자식들에게 그대로 승계된 것입니다.

 

뉴욕 양키스 경영의 근간은 '패밀리 비즈니스'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차녀인 제시카의 남편인 펠릭스 로페스도 경영 멤버로 이름을 올리고 있듯이,

가족 중심의 운영이 양키스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것입니다.

 

'패밀리 비즈니스'의 위험함

1990년대부터 양키스의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대형 FA선에게 구단의 명운을 맡겨왔습니다.

FA에 의한 대형 보강의 선택지는 여전히 버리지 않았지만, 행크는 지금이야말로 마이너리그에 눈을 돌려

유망주를 적극 육성해야만 한다고도 생각했습니다.

그 한편으로 가족 경영의 위험함을 지적하는 전문가들의 목소리도 적지 않습니다.

위에서 서술했듯이 가족 사이에 이혼이나 병가같은 위급한 사태가 일어나 구단 경영의 중추를 담당했던

인물이 그 자리를 비워야만 한다면, 경영의 근간이 뿌리째 흔들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선대로부터 이어받은 선박 사업으로 큰 돈을 번 조지 스타인브레너는 1973년 미국 3대 네트워크의 하나인

CBS방송국으로부터 880만 달러(현재의 시가로는 500억 이상)에 양키스를 매수하였습니다.

경제지 포브스에 의하면 양키스의 시장가치는 2008년 13억 달러(약 1조 5천억 이상)가 되어

약 150배로 상승하였습니다. 2008년의 구단 총 연봉은 약 2억908만 달러로,

2위인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의 1억 3869만 달러와 3위인 뉴욕 메츠의 1억 3829만 달러를 크게 웃돌았습니다.

 

1996년 양키스는 18년만에 월드시리즈를 제패하였고, 2000년까지 4번에 걸친 우승에 빛나는

'황금시대'를 쌓아 올렸습니다.(1996, 1998~2000년 우승)

이것을 계기로 양키스의 구단 경영은 보다 혁신적인 방향으로 전환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명문구단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글로벌 업무 제휴를 맺었습니다.

양키스의 높은 브랜드력을 살린 국제적인 비즈니스 네트워크는 중국의 프로리그와도 업무 제휴를 체결합니다.

이는 리그 내 다른 구단들의 추종을 허락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또 소프트웨어로서의 가치를 최대한으로 살리기 위해, 2002년 설립한 YES는

현재 미국에서도 가장 많이 시청되고 있는 스포츠 전문 케이블 네트워크로 성장하였다.

뉴욕, 뉴저지, 코네티컷주에라는 메트로폴리탄 지역의 케이블 TV 방송국들에게 있어,

이 킬러 콘텐츠 없이 가입자를 늘리는 것은 어렵다고 할 정도입니다.

포브스지는 YES의 시장 가치를 30억 달러라고 평가할 정도로 양키스의 우량자산으로 성장했습니다.